8월 28일 (금) 맑음

<청구회 추억>은 이른바 <신영복문학>의 백미이다.

그래서 몇 년 전 신영복선생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문집에 글 한편 써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 <청구회 추억>을 거론하며 이렇게 썼다.

...오랜 몰입의 탓인지 <청구회 추억>은 나의 추억처럼 기억되고 있다. <청구회 추억>에서 나는 사람을 만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인간관계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의 청년이 죽음의 문턱에 서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청구회 추억>은 사형선고를 받은 신영복선생이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유품을 미리 정리하듯 남긴 글이다. <청구회>란 1966년 서오릉 소풍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섯명의 꼬마들과 인연을 맺으며 만든 모임이름이며 이들과의 2년에 걸친 만남의 기록이 <청구회 추억>이다.

1992년 출소 이후 진보정당건설운동에 매진하던 시절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함께 늘 <청구회 추억>을 권하곤 했다. 활동가라면 특히 조직사업을 하는 활동가라면 마땅히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강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1991년 월간중앙에 게재된 글의 복사본 밖에 없어 마치 유인물 건네듯 이 복사본을 손에 쥐어 주곤 했다. 구미의 조근래동지는 이 복사본 <청구회 추억>을 읽고 신영복선생을 주례로 모시고 싶다고 해서 신선생을 모시고 구미까지 내려간 일도 있었다. 얼마 후 조근래동지는 <청구회 추억>을 수첩만한 크기로 만든 책자를 나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청구회 추억>은 이렇게 돌려가며 읽혀졌다. 그 후 <엽서>가 발간되면서 육군교도소 똥종이에 쓰여진 육필원고가 영인본으로 실리고, 부록처럼 다른 책에 함께 실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 글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램을 식힐 순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 들려왔다. 성공회대 조병은교수의 영역대조본 형식으로 김세현화백의 그림까지 곁들여 단행본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27일 선재아트센터에서 <청구회 추억>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강당은 만원이고 통로와 계단까지 선남선녀로 가득찼다. 가수 강산에까지 무대에 올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명태>와 <이구아나>를 연달아 불러 잠시 사탕을 두 손에 쥔 아이 심정이 되었다. <청구회 추억>출간 기념회이기도 하지만 마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주년이 되는 시점이고 돌이켜보면 20년을 옥중에서 보낸 신영복선생의 <바깥세상 체험 20년>도 되는 터이라 신선생의 인사말은 그에 걸맞는 ‘작은 강연’이 되었다.

북콘서트가 끝났는데도 신영복선생은 애독자들이 들고 온 책에 사인을 하느라 <잔업>으로 혹사 중이시다. 다음 일정 때문에 열기를 뒤로하고 나서니 화동의 밤공기가 삽상하기 그지없다. 바람소리처럼 어느 강연에선가 신선생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중층구조를 바꾼다고 사회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역사에서 또다시 무산된 경우를 얼마든지 보지 않았나. 사회를 바꾸려면 그 자체가 보람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오래 견뎌야 한다. 목표달성보다 운동 자체를 예술화하고 인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을 위한 운동일 뿐 아니라 인간다운 운동, 인간의 얼굴을 한 운동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날도 신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 했다. 가슴에서 발(실천을 뜻한다)까지 가는 여행은 더 힘들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나? 머리에서 출발하여 귀, 눈, 혹은 입까지 와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십년 운동을 하면서 칼날같이 날카롭게 맞선 상대가 아니라 함께 하는 동지들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스스로 올바르다는 생각에 빠져 쉽게 상처를 안겨주고, 또 상처를 받았다는 생각에서 그에 못지않은 상처를 주는데 주저함이 없다.  자신이 안긴 상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입은 상처만 바라보니 남는 것은 ‘상처입은 피해자’들뿐이다. 

이날 강연중에서 신선생은 독서란 3독이라 말하셨다. 텍스트(책의 내용)를 읽고 책쓴이를  읽고 동시에 자신을 읽는다고 해서 3독이라는 것이다. 마침 선선한 밤공기가 책읽기에 적절하다. <청구회 추억>이 우리들의 현재가 되길 바라며 3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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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3:22 2009/10/1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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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금) 흐리고 비

중복과 말복 사이이니 진짜 무더위는 이제 시작인가?

오래된 얘기 하나가 생각난다.

어느 날 소련공산당 니키타 흐르시쵸프 서기장이 소련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신무기개발의 최일선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서기장은 소련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과학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기장 자신이 모스크바 스탈린공대를 졸업한 이과출신인데다 평소 자연과학도들도 인문사회과학에 대해 일정한 교양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한 젊은 과학자에게 서기장이 질문했다.

“연구원동무는 <안나 까레니나>를 누가 썼는지 알고 있지?”

똘스또이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기 위해 이렇게 말을 꺼낸 것이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젊은 과학자는 난처한 얼굴로 서기장 얼굴을 쳐다볼 뿐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알지 못합니다. 서기장 동무”

당황하기로는 서기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안나 까레니나>를 누가 썼는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이미 서기장의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젊은 과학자가 답을 하는데 아까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다.

골똘히 생각하던 끝에 그가 다시 말했다.

“정말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쓰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흐르시쵸프 서기장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크렘린으로 돌아오자마자 국가보안위원회(KGB) 책임자를 호출하여 질책했다.

 “<안나 까레니나>를 누가 썼냐고 물었는데 자기가 안썼다고 대답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도대체 KGB가 어떻게 활동하길래 이런 답변이 다 나오나?”

 비록 정치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스탈린의 우상숭배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서기장은 스탈린식 공포정치의 도구가 되어온 KGB에 대해서도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터였다.

며칠 후 KGB 책임자가 밝은 표정으로 흐르시쵸프 앞에 섰다.

“서기장동무, 지난번 말씀하신 이후 국방과학연구소의 KGB 책임자가 그 젊은 과학자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장시간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 젊은 과학자는 자신이 <안나 까레니나>를 썼다는 것을 자백하였습니다."

미소 냉전시절 서방측에서 소련을 폄하하기 위해 이데올로기공세 차원에서 만들어낸 <유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리는 것은 바로 KGB가 담당한 실제 역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모스크바 시민들은 재선이 불가능했던 옐친이 다시 당선된 것은 스탈린의 도움이라고 입을 모았다. 6년간의 실정으로 낙선이 확실시 되던 옐친을 구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TV채널은 스탈린시대의 공포정치와 KGB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를 선거기간 내내 틀어댔다는 것이다.   

이 무더운 여름 우리나라의 KGB는 무엇을 하고 있나?

미국과의 쇠고기협상국면에서, 일본의 예고된 독도 도발상황에서 또 금강산피격사건을 포함한 대북문제 처리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제 역할을 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이 기간 동안 국민들이 바라는 국가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에 몰입하기보다 촛불의 배후나 뒤지고 촛불대응전략이나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면서 엉뚱하게 국내정치사찰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두어온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대통령도 2002년 대선후보 시절 국정원을 해외정보처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대통령이 되자 스스로 이 공약을 철회하였다. 오히려 2005년 7월 김승규원장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국정원이 “지방 토착비리 정보에 좀 나설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국정원법에도 위배되는 국내정치사찰을 독려하기까지 하였다.

지난 1월 이명박인수위는 국정원의 불법적인 국내 정치사찰을 막기 위해 제도적인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 아래 필요할 경우 국정원법 개정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일부 보도에선 논란이 돼온 대북정책 관련 업무를 떼어내 외교부나 통일부에 이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취임 6개월이 얼마 남지 않은 이명박정부의 그간의 행태로 볼 때 국정원개혁은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을 건넌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건너  5공의 안기부나 3공의 중앙정보부로 이미 전환했을 지도 모른다. 양지에서 일하는 경찰과 검찰이 이미 시대를 건너간 것처럼.

국정원이 <남산시절>이나 <남영동시대>로 돌아간다면 이제 해외정보는 누가 맡아야 하나? 어느 나라 소속부처인지 정체성이 애매한 외교통상부에 맡길 수 없다면 남은 것은 <국민>뿐인가? 외국대학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교민들이나 아고리안을 비롯한 네티즌들이 <해외>를 담당해야 하나? 우리의 국정원이 아고리안을 비롯한 국민들 뒷조사를 하는 동안 아고리안과 우리 국민들은 미국 CIA 홈페이지 뒤지고 미국지명위원회(BGN)와 스페인 해도청 동향 살피고 내셔널 지오그라피나 아틀라스 지도의 명칭변경을 감시해야 하나?

중복은 놓쳤지만 말복엔 아무래도 잘 먹어야 할 것 같다. 4년 6개월을 버티고 싸우고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까지 대행하려면 체력보강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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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3:18 2009/10/1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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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목) 비

폭우로 동부간선도로가 침수되어 대표단회의에 늦었다. 오랜만에 김석준 대표도 참석하였다. 어젯밤 4.9총선 진보신당 비례대표후보들의 모임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잊혀져 가고 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초창기의 당을 지키기 위해 고역을 마다 않았던 분들이다.

임성규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위원장과 간부들이 당을 방문하였다.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앞두고 진보신당과의 강력한 연대를 요청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준비 중인 하반기 주요사업에 공기업 민영화 문제에 관한 당의 적극적 대응방침이 포함되어 있다. 임성규 위원장은 시인이자 노동운동가이다. 그는 시인의 피는 항상 끓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강한 빗발이 내려치는 가운데 주경복 서울시 교육감후보의 노원구 연설회가 열렸다. 우려와 달리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였다. 민주당 노원구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하였다. 연설을 끝낸 주경복 후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주 후보는 연설이 나처럼 잘 안된다며 겸양의 인사를 한다. 그러나  주경복 후보의 연설은 차분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의지를 뿜어대고 있었다. 쉽고 친숙하게 다가서는 말솜씨와 몸에 배어 있는 진정성이 주 후보의 특장이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얼핏 보면 선심과 공짜가 넘치는 경쟁장 같다. 사교육비를 70%로 줄이겠다는 후보도 있고 영어는 학교에서 다 책임지겠다는 후보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 교육감선거는 철학과 노선의 싸움이다. 교육을 시장의 상품으로 보느냐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공복지로 보느냐 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이 부딪히고 있다. 무한경쟁을 통해 강자만이 살아남는 동물의 왕국 수준의 비교육적인 철학과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교육철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이다. 교육은 부와 가난이 세습되는 통로일 수밖에 없다는 <실용주의자>들과  교육은 기회균등을 통해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분배의 최일선이어야 한다는 <교육가적 양심>이 적나라하게 대비되고 있다.

교육인가 사육인가? 인간을 위한 교육은 강자와 약자를 다함께 배려한다. 우열을 구분하고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을 위한 훈련에선 강자만을 위한다. 강자를 더 강한 자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 과정에서 약자는 배제되거나 축출된다. 인간을 가르치는 교육감을 뽑을 것인가? 동물을 기르는 사육감을 뽑을 것인가? 여기서도 <물대포 후보>와 <촛불 후보>가 대립하고 있다.

빗속에서도 노원구의 촛불문화제는 계속되고 있다. 동네 아저씨 한분의 발언에 이어 열성 아고라인이라 밝힌 청년이 마이크를 잡았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돗자리 위에 양반다리 하고서 대열 맨 앞을 지키고 있다. 뒤쪽에선 예비군복 차림의 청년들도 대여섯 명 와 있다. 엊그제 부산일보 강연 때에는 <소울드레서> 회원인 잚은 여성들이 몰려와 뒤풀이까지 함께 한 바 있다. 촛불은 진화하면서 확산되고 있다.

 진보신당 유럽회의가 개설한 다음 까페(http://cafe.daum.net/eurojinboseason2)와 홈페이지(http://www.eurojinbo.net)에 들어가 인사를 남겼다. 지난 총선 때 유럽회의 당원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데 대한 인사를 미루다가 이제야 숙제를 한 셈이다. 인간문화제급인 최정규 동지는 여전하고 장광렬 동지도 열성이다. 장광렬 동지가 쓴 네덜란드 사회당에 관한 글이 돋보인다. 양해 없이 나의 블러그(http://blog.naver.com/hcroh)에 퍼놓았다.

늘 미안하고 고마운 분들이다.

당이 제대로 해 준 것도 없는데  당을 생각하는 마음이 대륙과 바다를 뛰어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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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2:56 2009/10/1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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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월) 비 온 후 갬

 오전 9시 대표단회의에서 주민소환투표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서울시의회 의장후보로부터 <직무와 관련된 뇌물>을 받았다는 서울 시의원이 수 십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를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사법부의 심판에만 맡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뇌물 수수 시의원들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추진을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에게 공식제안하기로 하고 서울시당과 논의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침 이은우변호사도 같은 취지의 제안을 보내왔다. 저녁에 박창완, 박치웅, 정호진 서울시당 공동대표들과 만나 23일 기자회견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오후 2시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가다. 현관에서 만난 신기남 전 민주당의원이 무슨 일로 법원에 왔냐며 묻는다. 2005년의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재판받으러 왔다고 하니 놀라면서 혀를 찬다. 이 재판은 증인의 계속된 출석거부로 공전 중이다. 이학수 전 삼성그룹회장은 재판부에 보낸 불출석 사유서에서 자신은 불법도청의 피해자이므로 재판에 나올 수 없다고 한다. 남의 집에 물건 훔치러 들어갔다가 몰래카메라에 찍힌 사람이 자신은 불법영상기기에 의한 피해자라 주장하는 꼴이다.

 대통령후보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광범한 뇌물공여를 모의하는 이학수, 홍석현 두사람의 대화내용은 옛 안기부직원들에 의해 녹취되었고 2005년에는 테이프, 녹취록 형태로 시중에 나돌았다. 2005년 8월 안기부 X파일 사건을 긴급현안으로 다룬 국회 법사위에서 나는 이학수, 홍석현씨의 대화내용중 검찰로비 부분을 공개하면서 전현직 고위 검찰 간부가 관련된 사건인 만큼 검찰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법무부장관에게 요구하였다.

 관련자 중 몇 사람은 즉각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검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덮어버렸다. 의혹대상자 중 몇 명은 돈을 받지 않았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다. 검찰은 뇌물이 오갔는지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명예훼손으로 기소하였다. 뇌물이 오갔는지 밝히지 못한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되는지도 따질 수 없다. 검찰이 밝히지 못한 진실은 이제 법정에서 밝힐 수 밖에 없다.

 나는 이 재판이 시작될 때 모두진술을 통해 이번 사건과 똑같은 상황에 다시 서게 된다면 똑같이 행동할 것이며 그것이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을 선출해준 국민들에 대한 도리라고 밝혔다. 그리고 검찰이 밝히지 못한 진실을 재판부가 가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학수 홍석현씨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안기부 도청테이프 속의 대화내용이 사실인지를 밝혀야 한다. 뇌물제공을 위한 대화조차 없었는지, 뇌물제공 모의는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은 것인지, 아니면 대화내용대로 실행에 옮긴 것인지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특히 앞의 두 경우 중 하나라면 이학수 증인이 출석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백승헌, 송호창, 김수정 변호사는 재판장에게 증인으로 채택된 이학수씨가 출석을 계속 거부할 경우 강제구인을 검토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블로그를 만들기로 하였다. 모르는 것은 하나씩 배우면서 터득하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고 운영하기로 하였다. 스킨이니 아이템이니 하는 것은 당분간 신경 안 쓰기로 하였다. 어디다 개설할까 의견을 구하니 <다음>에 하라는 의견이 많다. <네이버>는 <촛불 든 사람들>이 덜 선호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네이버>에 블로그를 개설하였다.

<난중일기>에 사진도 붙여 넣으니 보기도 좋고 재미가 쏠쏠하다. 

길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이 길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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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2:52 2009/10/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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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목) 맑음

한국가스안전공사 노동조합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특별강연을 하다. 20주년 기념 동영상을 상영하는데 19명의 발기인들이 비장한 각오로 창립대회를 갖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19명 중 이창수 초대 위원장을 포함하여  현직에 남아있는 12명이 기념식에 참석하여 공로패를 받았다.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준비해온 기념사 낭독을 포기하고 초대 위원장과 창립발기인에게 마이크를 넘긴 윤영만 현 위원장의 배려도 돋보였다. 임성규 공공운수연맹위원장은 동영상을 보며 목이 멘 얘기를 시인의 감수성으로 표현한다.

독도문제를 다루는 백지연의 끝장토론에 나가기로 최종결정 하였다. 첫 방송에 출연한 후 여러 사람들로부터 <다신 나가지 마라>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그 후 몇 차례 출연교섭이 있었으나 일정도 맞지 않아 사양했다. 다른 건 몰라도 녹화방송에다가 발언의 일부가 편집되는 것은 문제였다. 다행히 내일 방송은 생방송으로 편집 없이 진행된다 하여 고심 끝에 결정하였다. 

오늘날 독도문제는 일본으로선 죽도(竹島, 다케시마) 문제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죽도 문제는 곧 울릉도 문제였다. 울릉도를 죽도라 부르며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 일본 때문에 1697년 일본이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3백년간 영토분쟁이 지속되었다. 

참으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지 <조용한 외교>로 넘어가려다가 발목 잡히는 정부의 태도는 3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재현되고 있다. 물론 한번은 희극으로 다시 한번은 비극으로.

<조선실록>에 따르면 울릉도에 대한 조선조정의 방침은 무인(無人)정책이었다. 공권력에 의한 통제가 힘들고, 세금 걷기도 어렵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 발판이 될 수도 있으니 아예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자는 정책이었다. 몰래 들어가 울릉도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은 처벌대상이었고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조정에서 안무사를 보내곤 했다. 이러한 울릉도 무인정책은 역대 정부의 독도 무인정책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1년 일본을 방문해서 40억불 차관을 약속받고 돌아온 후 <독도는 우리 땅> 가요를 방송금지 시키고, 독도 의용수비대장 홍순칠을 정보기관으로 끌고 가 고문하고 다신 독도문제를 거론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풀어주고 1982년에는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해 일반인의 독도상륙을 금지시킨 바 있다.

소설가 김주영의 체험고백에 의하면 어떤 방송사가 기획한 동해 오징어잡이 어선 실태를 함께 취재하러 갔다가 독도 근처에서 폭풍을 만나 독도에 상륙을 시도하자 독도를 지키던 해양경비대 십 여명이 총을 들이대며 상륙을 저지하려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이 발효되면서 민간인의 독도상륙은 완전히 금지 되었다.

조선시대 울릉도 영토분쟁에 대한 <조용한 외교>의 극치는 끝내 한편의 희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1663년 안용복은 울산어부 40여명과 함께 울릉도에 배를 댔다가 일본 본토로 끌려간다. 널리 알려진 대로 안용복은 배포와 지혜로 오히려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설득해 이를 확인하는 일본의 공문과 조선에 보내는 공물을 받아온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안용복은 대마도에서 공문과 공물을 뺐기고 포로로 잡혀 조선으로 보내진다. 안용복을 끌고 조선에 온 대마도 사신이 대마도 도주의 편지를 조정에 전하는데 그 내용은 짐작한대로이다.

<귀 나라의 고기잡는 백성이 해마다 본국(즉 일본)의 죽도(竹島)에 배를 타고 왔기에 우리가 다시 와서는 안된다고 알렸습니다. 그런데도 올 봄에 또 어민 40여명이 죽도에 들어와 고기를 잡으므로 우리 관리가 그 가운데 두 명을 잡아두고 한동안 증거로 삼으려 했습니다. 이제 이 어민들을 돌려보내니 다시는 저 섬에 배를 대지 못하도록 조치해 두 나라의 친분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하십시요>

문제는 이 서신에 대한 조정의 답변이다.

<조선에서는 어민을 단속해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으며 또 우리나라 울릉도도 아득히 멀리 있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물며 그 밖의 섬이야 어떻겠습니까. 지금 이 어선이 감히 일본 국경안의 죽도에 들어갔으나, 번거롭게 이 사람들을 보내주고 멀리서 편지로  알려주니 이웃 나라와 교제하는 두터운 정을 실로 기쁘게 느끼는 바입니다>

<죽도는 곧 울릉도이고 울릉도는 곧 우리 땅인데 우리 땅에 우리 백성이 들어간 것이 무슨 문제이며 너희가 왜 이를 문제 삼는가>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은가! 조선의 울릉도가 일본에선 죽도라는 것은 양국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인데 분쟁을 피하자는 얄팍한 속셈으로 <울릉도는 조선 땅이지만 죽도는 일본 땅인데 죽도에 조선 사람이 들어갔다면 잘못된 것이다>고 했으니 이런 희극이 또 어디 있는가?

이 어처구니없는 희극은 3백년이 지난 후에 비극으로 재현되었다.

1994년 유엔 해양법협약이 발효되면서 각국 영토로부터 200해리 EEZ(배타적경제수역)이 확립되자 일본 하시모토총리는 1996년 독도를 자신들의 EEZ 기점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김영삼대통령은 일본총리의 발언에 대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기염을 토했지만 그것은 반일감정을 의식한 국내용일뿐 실제 한일어업협상에선 이 난제를 피할 궁리를 앞세웠다. 결국 1998년 체결된 신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라는 단어는 증발하였다. 명기되지 않았을뿐 아니라 위도와 경도로 위치도 표시되지 않았다.

실제 신어업협정에서 독도는 <존재하지 않는 섬>이 되어버렸다. 우리 정부는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 경제수역이나 대륙붕을 가지지 아니한다>는 유엔 해양법협약 제 121조 3을 독도에 적용시켰다. 일본이 독도를 <인간이 거주할 수 있고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섬>이며 자신의 영토라 강변하고 있는데 이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그건 섬이 아니라 암석이라고 규정하면서 독도 주변수역을 한국 일본이 공동관리하는 <중간수역>으로 합의해버렸다. 자신의 영토라면 당연히 확보해야 할 35해리 전속관할수역도 주장하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이 어업협정에서 독도가 한일양국 어느 일방에도 속하지 않는 분쟁지역임을 입증하는, 미래를 위한 중요한 진전을 확보하였다. 반면 한국정부는 독도라는 땅만 점유하고 있을 뿐 독도라는 자국의 영토에 딸린 바다는 실질적으로 점유하지 못하는 상황을 공식화 해버렸다.

 1997년 11월 6일자로 독도에 177억원 상당의 국고예산을 들여 3년간의 공사 끝에 훌륭한 부두시설과 숙박시설 건설을 완료하고 1999년에는 유인등대까지 가동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이다. 그런데 신한일어업협정 과정에서독도를 <인간이 거주할 수 없고 독자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무인 불모의 고도>로 규정한 것도 대한민국 정부이다.  

 2000년 정월 초하룻날 방송3사의 새천년 해돋이 생중계팀은 정부가 독도 입도를 금지시키는 바람에 울릉도에서 해돋이 생중계를 해야 했다. 2006년 대한체육회는 2008년 북경올림픽 남북단일팀 문제를 논의하던 남북체육회담에서 <한반도기>에 독도를 표기하자는 북한 측의 주장에 <일본과의 외교적 대립을 가져올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일본과의 굴욕적 외교 끝에 독도를 임자 없는 암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대한민국 정부만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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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2:50 2009/10/1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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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한 노동자가 체불임금 문제로 민원을 제기하였다. 내용을 들어보니 체불임금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체불임금 해결을 위해 그 사건이 <PD 수첩>에 보도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분이 한 사람 뿐이겠는가? 옛날 같으면 <신문고>라도 쳐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고 싶은 힘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PD수첩>은 <사회의 목탁>을 넘어서서 <마지막 신문고>가 되고 있다.

지난 5월 굴욕적인 대미 쇠고기협상 결과에 항의하기 위해 2박 3일간 청와대 앞에서 양당 정치인들이 농성을 할 때 보니까 아직도 청와대 앞에 대고각(大鼓閣)이라는 누각을 지어놓고 신문고를 모셔놓고 있었다. 물론 그 신문고 앞에는 <이 북은 조형물이니 치지 마십시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신문고를 설치했는데 억울한 사정에 처한 시민들이 종종 신문고를 치는 일이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해 안내판을 부친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청와대 정문 앞을 지키는 경찰과 경호실 직원들의 임무 중의 하나가 <시민이 신문고 치는 것을 막는 일>인 것 같았다. 실제 2004년에는 평통사 회원들이 굴욕적인 용산기지협상에 항의하면서 이 북을 치다가 연행된 일도 있었다.

최근 촛불에 덴 정부가 검찰과 경찰을 앞세워 <PD수첩>을 협박하고 <아고라>를 무슨 <불순 단체>인양 몰아 부치고 광고 불매운동을 벌인 네티즌들을 출국금지 시키고 집안까지 압수수색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더니 검찰과 경찰은 확실히 10년 전 정권의 하수인 시절로 돌아갔다. 

흐르는 물에 막힘이 없듯이 언로(言路) 또한 막는다고 막아지는게 아니다.

송나라제도를 모방해서 태종이 처음 설치한 신문고는 애초부터 평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제도였다. <경국대전>이 밝히고 있는 대로 서울에선 주장관 지방에선 관찰사에게 소장을 낸 뒤 그 처리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신문고를 칠 수 있도록 하였다. 게다가 이런 절차를 다 밟는다고 해도 내용에 엄격한 제한을 가해  가급적 신문고가 울릴 수 없도록 하였다.

신문고 치려다가 엄벌 받는 경우까지 생겨나자 억울한 백성들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왕의 행차에 뛰어들어 글을 올리는 상언, 왕의 행차나 궁중에 직접 다가가서 구두로 직소하는 격쟁이 생겨났다. 상언과 격쟁이 빈발하자 일부에서 차라리 신문고를 쉽게 치게 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묵살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왕의 가마에 다가서서 읍소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려워졌다.

<인조실록> 1642년 5월의 기록엔 상언을 막기 위해 임금이 궁궐 밖으로 거동하는 행행도 폐지했다고 말한다. 말도 못하는 세상에서 백성들이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1607년 경기도와 황해도에서, 1626년 경상도 의성에서, 1653년 경상도 상주에서, 1671년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올 8월로 정년퇴임 하시는 최장집 선생님의 새 연구실을 방문했다. <민주주의 교육 연구센터>라는 이름을 거셨다. 개소식을 따로 갖지 않고 가까운 몇 분들을 공부모임에 초청한 것이다. 심상정 대표와 임종인 전의원도 자리를 함께 했다. 영국노동당사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고세훈 교수도 오랜만에 뵙게 되었다. <최장집과 세계읽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세미나에서 오늘 발표의 결론은 <진보적 리더쉽>에 관한 내용이다. 새기고 성찰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발표 말미에 최선생님은 낙선한 3인을 가리켜 중요한 언급을 하신다.

<낙선해야 공부할 수 있다. 이번에 당선한 사람들은 일정에 쫓겨 공부하기도 힘들다. 공부를 위해선 일단 떨어져야 한다. 잘 떨어졌다!>

낙선 이후 들은 가장 통쾌한 말씀이다.

뒤풀이 자리에서 이대근 경향신문 에디터는 책이 많이 팔렸다며 고마워한다. 경향신문이 발간한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이란 책을 다룬 <TV, 책을 말한다>에 출연한 데 대한 덕담이다. 얼마 전 같은 프로그램에서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다룰 때 출연해서 마지막 발언으로 <토지를 많이 소유하는 사람보다 토지를 많이 읽는 사람이 더 부자입니다>고 말했더니 며칠 후 해당 출판사에서 토지 전질을 선물로 보내왔다.

예로부터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책은 뇌물로 준다 해도 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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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2:44 2009/10/1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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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객 사망사건 때문에 청와대는 울상이다.

모처럼 이뤄진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대화제의가 빛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금강산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제안이 갖는 문제점이 가려지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이명박 정부의 인식과 철학과 정책노선이다.

그들이 줄곧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 하지만 실제 그들이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것은 ‘권력’밖에 없다. 물론 최근 하는 일들을 보면 권력 외에 ‘정신’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정부에 그렇게 염증을 낸 대한민국 부자들도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것이 없는 계층이다. 참여정부 재임기간인 2003년에서 2007년까지 5년 동안 대한민국은 백만장자(기초 부동산 제외하고 순금융자산이 100만달러 이상인 계층) 증가율이 세계 3위, 7위, 1위, 6위, 4위를 기록하였다. 실로 지난 5년간은 대한민국 부자들에게 ‘살맛나는 세상’이었다. 지난 10년간 잃버린 것이 있는 사람들은 오직 서민 밖에 없다. 직장을 잃고, 가게를 잃고, 인간다운 생활을 잃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허구가 낳은 허위의식 중 대표적인 것은 대미관계와 대북관계에 관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좌파정권들>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또 북한에는 퍼주기만 하면서 끌려 다녔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이 낳은 첫 작품이 지난 4월 18일 타결된 쇠고기수입협상이다. 향후 거래를 위해 원청회사에 한턱 크게 써서 환심 사겠다는 사업가 정신의 발로로 밖에 볼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은 바로 <검역주권>, <국민건강권>을 포기해서라도 미국과의 관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이들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북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평화와 통일에 관한 철학은 둘째 치고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나 동북아정세의 변화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에게 북한은 돈줄을 쥐고 버릇을 고칠 수 있는 <나쁜 거래처> 정도로 인식되었던가.  <핵무기 폐기 없이 대북지원 없다.>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대북지원과 협상은 없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북미대화가 어느 때보다도 진전을 보고 있다는 정보보고도 없었는지 집권 초기부터 으름장 일색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용맹>은 오래가지 않았다. 5월 초 국제정세의 변화를 뒤늦게 읽은 정부는 통일부 장관을 내세워 <지원>을 제안하였다. 스스로도 궁색하였는지 노무현 정부 때 약속한 물량일 뿐 자신들이 새롭게 지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둘러댔다. 북에서 답이 없자 이젠 고개를 숙이고 무릎까지 조아리며 가져가 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보수언론 일각에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계승하겠다고 말해야 한다며 조언하자 며칠 후인 7월 11일 국회시정연설에서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실천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이 정부가 과연 국정을 책임질 능력과 비전이 있는 정부인가. 국민이 종업원이 아니고 미국과 북한이 거래처가 아니데 건설회사 경영하듯 대한민국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 갈 수 밖에 없다.

오전 11시 상계동의 교회를 찾았다. 선거 때 지원해준 분이 많은지라 감사인사도 드릴 겸  예배에 참석했다. 설교가 끝난 담임목사님이 신도들에게 인사를 시키면서 농담조로 <이젠 촛불 그만 드시죠> 한다. 촛불은 생활 속에서 전선이 되어 있다.

오후 3시 심상정 대표와 고 박왕자씨 빈소를 찾았다. 고인은 물론  남편과 외아들 모두 상계동 주민이시다. 사인도 명확치 않은 상태인지라 가족들은 슬픔과 분노를 억누를 뿐이었다. 계속 드러나는 정황은 고인의 실수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백보 양보해서 보더라도 범칙금 100달러면 충분한 사안에 목숨까지 잃어야 하는가. 북의 과잉대응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또 그 철책을 넘으면 총격을 가한다는 것이 북의 경계수칙이라면 24시간 경비인력을 투입해서라도 철책을 지켜야 하는 것이 현대아산과 남측정부의 임무이다. 접대를 하는 현대아산과 현대증권 임원들도 자신 있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인사말로 진보신당 화환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며 덕담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꽃이 무슨 소용인가.

꽃보다 잘생긴 외아들을 두고 50대 초반에 떠났는데

꽃이 무슨 소용인가.

살아남은 자들이 할일을 다 못한 상태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기에도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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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2:40 2009/10/1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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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토) 흐리고 비

여수에서 첫 비행기로 서울로 향하다.

바로 시청 앞으로 가서 구해근 교수님을 만났다. 부인과 사별하신 뒤 어려움이 크셨을 터인데 온화한 모습은 변함이 없다. <한국노동계급>에 대한 관심 역시 여전하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나타난 계급투표 경향에 대해 물어보신다. 요즘 이른바 세계화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 결과에 대한 연구를 구상하고 계신다고 한다. 다행히 미국은 대학교수 정년제가 없는지라 여전히 강단을 지키고 왕성한 연구활동이 가능한 것 같다.

코넬대에서 2001년 발간한 구해근교수의 <한국노동계급의 형성>은 다음해 창비에서 번역되어 나왔고 미국 사회학회(ASA)에서 <아시아 부문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역작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전투성과 강인한 조직력을 자랑했던 한국의 노조운동이 국가와 자본의 대대적인 공세 앞에서 쇠퇴하는 과정에서 정치세력화의 미진과 사회전략의 빈곤이 미친 영향에 저자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책이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 펼쳐본다.

<...월드컵응원을 위해 붉은 셔츠를 입고 거리를 가득 메운 오늘의 젊은이들 중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로 인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숱한 고난을 겪고 희생을 치러야 했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우리는 한국의 산업화,민주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담당했던 역사적 역할을 다시 한번 정확하게 인식하고 기록할 필요가 있다. 지금 시청 앞 광장에서 최루가스를 마시며 독재타도를 외치는 대신 거리낌 없이 ‘붉은 악마’가 되어 축제와 대동의 한마당을 즐길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한번도 역사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에 크게 힘입고 있음이 상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날 붉은악마가 축제를 벌였던 서울광장은 다시 촛불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987년 6월이 재현되고 있다는 바램과 평가도 난무하였다. 동시에 김경욱 이랜드노조위원장의 <촛불은 왜 비정규직 문제에 주목하지 않는가>라는 절규도 울려 퍼졌다. 실제 1987년 6월에도 우리는 그랬다. 이른바 대중성을 내세워 <직선제 개헌>으로 요구를 한정시키려는 보수야당과 국민운동본부 일부세력에 맞서서 <민중생존권>관련 요구를 앞세우기 위해 얼마나 싸워왔던가!

구해근교수는 한국의 정치권력이, 문화권력과 함께, 자본과 영합하여 노동자들의 계급정체성과 계급의식 고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역으로 노동자들 특히 그들의 운동은 이에 어떻게 대항해왔는가 하는 문제를 자기성찰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간의 투쟁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한번도 역사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지 못한 배경에는 권력과 자본의 억압 이외에 자신의 문제도 있지 않느냐는 무거운 문제제기인 것이고 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운동의 중요한 당면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넬대로 공부하러 떠나는 서찬석 당원의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되었다고 하니 구교수도 잘 아는 사이라 하여 함께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주례를 마치고 청계광장으로 가니 정태인교수와 칼라TV 식구들이 <10대 연대> 깃발을 든 청소년들을 취재하고하고 있다. 정태인, 진중권, 이명선 그리고 칼라TV 관계자들..촛불이 낳은 <불멸의 전사들>이다.

시청 앞을 헤매다가 저녁 늦게 공덕동 <민중의 집> 일일주점에 들렀다. 심광현 공동대표는 민중의 집을 만드는데 기울인 수년간의 노력을 설명하며 이제 진보신당이 책임져야한다고 역설한다. 함께 공동대표를 맡은 정경섭 위원장이 있는 한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박진희위원장을 비롯한 구사회당관계자들도 여럿 참석했고 김경욱, 이남신 동지들도 이랜드 식구와 함께 왔다. 마포당원들은 당원 수로 보나 구성으로 보나 이제 서울에서 관악등의 시대는 가고 마포의 시대가 왔다며 나에게 현실을 직시할 것을 주문하였다.

밤이 늦도록 빗속의 촛불은 종로를 지키고 공덕동의 촛불은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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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2:37 2009/10/1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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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금) 한때 비

비행기 일정 탓으로 여수 시내 약속에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둘러보니 다행히 PC방이 있다. <토막일기>를 쓸 찬스이다. 당 게시판에 들러보니 와이브로, 티로긴, 아이플러그, 블루베리 등이 제안되어 있다. 무선인터넷이 발달했으니 구차한 변명하지 말고 당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라는 뜻이다.  어릴 적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였던 단어들- 산딸기, 청포도, 바나나, 파인애플-이 떠오른다. 꿈의 소통도구들이다.

뉴스란으로 옮겨가니 비보가 실려 있다. 금강산 관광 중이던 50대 여성이 북측의 사격으로 숨졌다고 한다. 구체적인 정황은 엄정한 조사 후에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후 사정이 어떠하던 금강산 관광객이 인근 해안에서 피격 당한 것은 북측의 과잉대응이다. 그 관광객이 실수를 하였고 북측 병사가 근무수칙대로 하였다 하더라도 과잉대응이란 비판은 면할 길이 없다. 금강산 관광객은 안전하게 관광할 권리를 갖고 있다. 설사 관광도중 관광객의 부주의로 사고가 나더라도 관광객이 목숨을 잃는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장하고 대비해야 할 책임이 북한당국과 남한당국 그리고 현대아산에게 있는 것이다.  서울과 평양의 정부간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정황이지만 이 일과 관련하여 북한당국의 책임 있는 유감표명이 필요하다. <우리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상황은 어떤 경우에도  <양해>할 수 없다. 당에 연락하여 대표단명의의 조화를 보내고 문상일정을 챙기도록 부탁했다.

해운항만청과 국토관리청 공무원노동조합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오늘 여수강연 소식을 듣고 사전 면담을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그간 국가사무로 이뤄지던 항만, 도로관리를 지방사무로 이관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취지이다.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하는 원칙과 나라의 기간시설을 지자체의 이해관계에 내닫길 수 없다는 논리가 부닥치는 쟁점이다. 물론 국가공무원인 이들의 신분이 지방공무원으로 전환되면서 고용보장이 위협받는 현실도 바탕에 깔려 있다. 당 차원의 정책적 검토를 해야 할 사항이다. 

여수청소년수련원에서 당원 및 주민강연회가 개최되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수 갑 후보로 출마하여 고생한 김미경후보가 늘 그렇듯 맑은 얼굴이다. 모든 후보가 고생한 선거였지만 특히 외롭고 고단했을 여수지역 선거상황이 짐작되고도 남는데 내일 다시 출마해도 될 듯 힘이 넘친다. 강연이 끝나고 당원들과 간담회를 갖는데 무거운 주제들이 쉼 없이 쏟아진다. 주민들 앞에선 당의 밝은 전망을 힘주어 강조했을 이들이 당 대표 앞에선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서 희망의 단서를 발견해내려는 듯 귀를 모은다. 올해 10월 지방선거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가가 쟁점 중 하나이다. 조직의  현 발전단계에 어떠한 접근이 더 도움 되는지 냉철하게 판단할 것을 주문했다.

전라남도는 지금 전국 광역조직 중 가장 어려운 지역 중 하나이다. 여수당원들은 전남을 일으킬 선두 역할을 스스로 자임하고 있다. 촛불도 전남에선 여수가 가장 활발했다며  자랑한다. 촛불정국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신입당원도 늘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주성현동지가 집으로 모시겠다는 걸 여관 하나 잡아달라고 했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더 값진 것인가.

그들은 말한다. <여수가 되면 진보신당 다 되는 것이다>

여수당원들의 결연한 의지와 비장함이 깊은 밤 홀로 앉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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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2:33 2009/10/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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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중앙당 당사에 들어서는데 전투경찰 두 명이 당사입구를 지키고 있다. 지난 7월 1일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 간부 몇 사람이 심야에 난입한 폭행사건 이후 특임자회에서 사과는커녕 당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겠다고 보름치 집회신고를 하는 바람에 부득이 하게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을 한 결과이다. 진보정당이 백주 대낮부터 경찰의 보호 하에 있어야 하는 상황도 문제이거니와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간 젊은이들을 국민을 상대로 <전투>하는 경찰로 차출한 편법도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오전에 열린 대표단회의에서 당원 의식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당원들의 처지와 상태를 감안하고 당원들의 요구와 희망을 반영하는 사업추진을 위해 필요한 기초작업의 일환이다. 지난 6월 초 현재 전체 진보신당 당원 중 민주노동당 활동경험을 가진 당원은 37%에 불과했다. 63%의 당원이 민주노동당을 거치지 않고 진보신당에 입당한 분들이다. 과거 당 운영방식의 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매우 절실한 기초조사이다. 

총선과 촛불정국을 관통하면서 급증하는 당원들이 실질적인 당의 주인으로 재정착하기 위해서는 당원교육 등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이 절실하며 그 첫걸음을 과학적인 현황분석으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재정사정을 감안하여 전체 당원을 대상으로 이메일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대표단회의를 마친 후 충북 단양으로 향한다. 전국수협노동조합의 분회장 교육이다. 전국에  있는 분회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수련회는 수협노조의 가장 큰 연례행사이다. 수협노조는 그간 진보신당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한국노총 금융산업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다. 한준우 위원장은 하반기로 예정된 구조조정을 걱정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명박다운 신자유주의의 칼, 민영화의 칼, 무한경쟁논리의 칼을 휘두를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두 달째 지속된 촛불정국이 이대통령의 칼춤을 어느 정도 유보시켰을 뿐이다. 겨우 장관 세 명 바꾸는 개각에서도 드러났지만 지지율 20%대의 이명박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일은 이미 자포자기한 것 같다. 어차피 민심을 얻지 못할 바에야 민심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태도가 역력하다. 전운이 감돌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일파(一波) 이후 닥쳐올 만파(萬波)가 기다리고 있다.

저녁시간에 초록교육연대 강좌를 위해 동대문 한살림 교육장으로 가다. 당이 초록과 생태를 주요한 진보적 가치로 내건 탓인지 총선이후 생태운동진영에서 당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얼마 전엔 생협 물류기지에서 일하는 분들의 강연 초청도 있었다. 초록교육연대는 일선 학교현장에서 생태환경교육을 실천해 온 교사들과 환경운동단체 활동가 등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교육운동단체이다. 생태친화적인 학교교육 계획수립, 생태환경동아리 육성, 친환경급식 실시 등을 주요 실천과제로 하고 있다.

강연주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진보진영의 대응과 방향>이다. 촛불의 연장인지 이 어려운 주제로 강연하는데 초등학교 자녀를 데리고 온 분들이 있다.  실로 곳곳에서 이명박 정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이 말해준다. <이명박이 몰려오고 있다!>

강연이 끝난 후 뒤풀이 요청을 사양하고 노원구 촛불문화제로 향하다. 노원역 부근 백화점 앞 광장. 밤 9시가 지났는데 대오가 정연하다. 마들주민회의 서진아대표가 오늘도 수고를 하고 있다. <진보신당 노원> 깃발을 박영필동지가 움켜쥐고 있다. 촛불중년 임종길동지도 늘 그렇듯 개근이다. 오랜만에 공혜경동지도 나타났고 김의열위원장도 개근이다. 노원지역 지체장애인동지들도 휠체어를 타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서도 뒤풀이를 사양하고 지역사무실로 가서 남은 업무를 처리했다.

뒤풀이에 참석한 아내는 새벽 두시가 되어서야 귀가하였다.

먼저 자리를 일어섰다고 한다.


집권한 뒤에도 매번 행사 후 뒤풀이를 할 것인가.

진보진영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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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2:25 2009/10/1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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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자유인,문화인,평화인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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