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금) 맑음

<청구회 추억>은 이른바 <신영복문학>의 백미이다.

그래서 몇 년 전 신영복선생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문집에 글 한편 써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 <청구회 추억>을 거론하며 이렇게 썼다.

...오랜 몰입의 탓인지 <청구회 추억>은 나의 추억처럼 기억되고 있다. <청구회 추억>에서 나는 사람을 만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인간관계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의 청년이 죽음의 문턱에 서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청구회 추억>은 사형선고를 받은 신영복선생이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유품을 미리 정리하듯 남긴 글이다. <청구회>란 1966년 서오릉 소풍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섯명의 꼬마들과 인연을 맺으며 만든 모임이름이며 이들과의 2년에 걸친 만남의 기록이 <청구회 추억>이다.

1992년 출소 이후 진보정당건설운동에 매진하던 시절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함께 늘 <청구회 추억>을 권하곤 했다. 활동가라면 특히 조직사업을 하는 활동가라면 마땅히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강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1991년 월간중앙에 게재된 글의 복사본 밖에 없어 마치 유인물 건네듯 이 복사본을 손에 쥐어 주곤 했다. 구미의 조근래동지는 이 복사본 <청구회 추억>을 읽고 신영복선생을 주례로 모시고 싶다고 해서 신선생을 모시고 구미까지 내려간 일도 있었다. 얼마 후 조근래동지는 <청구회 추억>을 수첩만한 크기로 만든 책자를 나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청구회 추억>은 이렇게 돌려가며 읽혀졌다. 그 후 <엽서>가 발간되면서 육군교도소 똥종이에 쓰여진 육필원고가 영인본으로 실리고, 부록처럼 다른 책에 함께 실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 글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램을 식힐 순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 들려왔다. 성공회대 조병은교수의 영역대조본 형식으로 김세현화백의 그림까지 곁들여 단행본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27일 선재아트센터에서 <청구회 추억>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강당은 만원이고 통로와 계단까지 선남선녀로 가득찼다. 가수 강산에까지 무대에 올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명태>와 <이구아나>를 연달아 불러 잠시 사탕을 두 손에 쥔 아이 심정이 되었다. <청구회 추억>출간 기념회이기도 하지만 마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주년이 되는 시점이고 돌이켜보면 20년을 옥중에서 보낸 신영복선생의 <바깥세상 체험 20년>도 되는 터이라 신선생의 인사말은 그에 걸맞는 ‘작은 강연’이 되었다.

북콘서트가 끝났는데도 신영복선생은 애독자들이 들고 온 책에 사인을 하느라 <잔업>으로 혹사 중이시다. 다음 일정 때문에 열기를 뒤로하고 나서니 화동의 밤공기가 삽상하기 그지없다. 바람소리처럼 어느 강연에선가 신선생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중층구조를 바꾼다고 사회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역사에서 또다시 무산된 경우를 얼마든지 보지 않았나. 사회를 바꾸려면 그 자체가 보람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오래 견뎌야 한다. 목표달성보다 운동 자체를 예술화하고 인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을 위한 운동일 뿐 아니라 인간다운 운동, 인간의 얼굴을 한 운동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날도 신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 했다. 가슴에서 발(실천을 뜻한다)까지 가는 여행은 더 힘들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나? 머리에서 출발하여 귀, 눈, 혹은 입까지 와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십년 운동을 하면서 칼날같이 날카롭게 맞선 상대가 아니라 함께 하는 동지들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스스로 올바르다는 생각에 빠져 쉽게 상처를 안겨주고, 또 상처를 받았다는 생각에서 그에 못지않은 상처를 주는데 주저함이 없다.  자신이 안긴 상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입은 상처만 바라보니 남는 것은 ‘상처입은 피해자’들뿐이다. 

이날 강연중에서 신선생은 독서란 3독이라 말하셨다. 텍스트(책의 내용)를 읽고 책쓴이를  읽고 동시에 자신을 읽는다고 해서 3독이라는 것이다. 마침 선선한 밤공기가 책읽기에 적절하다. <청구회 추억>이 우리들의 현재가 되길 바라며 3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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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3:22 2009/10/1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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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자유인,문화인,평화인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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